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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 창작오페라 ‘침묵 – 화양애가, 무명의 노래’

여순사건 창작오페라 ‘침묵 – 화양애가, 무명의 노래’

 

지난해 창작오페라 《침묵 1948》에서 부모와 딸로 만났던 테너 이범주, 소프라노 김신혜, 소프라노 장서연이 올해 신작 《화양애가, 무명의 노래》에서도 다시 한 가족으로 무대에 오른다. 지난해 정국부·정국모·정희로 호흡을 맞췄던 세 사람은 올해 석구·해심·영분 역을 맡아 또 한 번 가족의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 간다.

 

두 작품에서 연이어 가족으로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특별하지만, 세 사람의 인연은 무대 위 배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난해 작품을 함께하며 가까워진 이들은 이제 서로의 음악을 이해하고 응원하는 든든한 동료이자 선후배가 됐다. 특히 국내외 오페라 무대에서 주역 가수로 활발히 활동하는 이범주와 김신혜는 젊은 신예 장서연에게 음악적 경험과 무대의 지혜를 아낌없이 나누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다. 장서연 역시 두 선배를 깊이 존경하며 함께하는 무대마다 소중한 배움의 시간을 쌓아 가고 있다.

 

이번 작품은 창작진의 깊은 예술적 고민과 개인적인 사연으로도 주목받는다. 여순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한국방송대상 작품상을 수상한 최난화 작가는 여순 10·19의 무대인 화양반도라는 시공간을 통해 그곳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소박하고도 절실한 삶을 들여다본다. 78년 전 화양의 들녘에 피어났던 목화처럼,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사람들을 《화양애가, 무명의 노래》의 무대 위에 다시 불러내고자 했다. 여순사건 희생자와 유가족들이 긴 침묵의 시간을 건너 함께 안식의 집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라는 기도로 대본을 완성했다.

 

2024년 창작오페라 《바다에 핀 동백》으로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던 작곡가 박영란도 다시 한번 창작의 붓을 들었다.

 

특히 이번 작품의 음악에는 작곡가 박영란의 애틋한 마음이 더욱 깊이 배어 있다. 투병 중이던 친정어머니를 간병하는 가운데 써 내려간 악보에는 어머니를 향한 사랑과 간절함이 음표 하나하나에 스며들었다. 안타깝게도 박영란의 모친은 공연을 한 주 앞두고 별세했다. 작곡가의 슬픔과 작품에 담긴 마음을 함께 나누며, 전 출연진은 고인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공연 준비에 더욱 정성을 다하고 있다.

 

이번 작품의 지휘를 맡은 조정현은 박영란의 음악이 지닌 한국적 정서와 작품의 예술적 깊이를 강조했다.

 

“박영란 작곡가의 음악은 서양음악과 국악의 조화를 통해 한국적인 정서와 애환을 누구보다 깊이 있게 담아냅니다. 2024년 《바다에 핀 동백》을 비롯해 선생님의 여러 작품을 지휘해 왔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작곡가 고유의 음악적 색채가 더욱 짙고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여순사건이라는 아픈 역사를 음악으로 풀어낸 이번 작품이 사건의 유가족분들께는 깊은 위로를, 관객 여러분께는 가슴을 울리는 진한 감동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화양애가, 무명의 노래》는 역사 속 비극을 조명하는 동시에 상실과 그리움, 가족을 향한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을 음악과 극으로 풀어낸다. 작품에 담긴 창작진의 진심은 무대 위 인물들의 이야기를 더욱 절절하게 만들며, 관객들에게도 깊은 여운을 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민수 연출은 이번 작품이 관객들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관객들이 공연장을 나설 때, 가슴 한구석에 화양리 여인들의 눈물 어린 얼굴과 그 처연한 노래가 온전히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이 무대가 여수라는 공간을 넘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억울하고 아픈 이들을 보듬는 따뜻한 기억의 징검다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번 공연에서는 또 다른 반가운 얼굴을 만날 수 있다. 2024년 창작오페라 《바다에 핀 동백》에서 살인마 김종원을 모티브로 한 장교 역을 맡아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던 바리톤 김정훈이 이번에는 경찰 역으로 돌아온다. 짧은 등장만으로도 강한 인상을 남기는 악역 연기로 관객들에게 다시 한번 긴장감과 몰입감을 선사할 예정이다.

 

남편을 잃고 모진 고문 끝에 미쳐 버리는 며느리 명선 역의 메조소프라노 남수지의 열연을 비롯해 바리톤 오세원과 임채진, 소프라노 김다미 등 탄탄한 조역진의 활약도 기대를 모은다.

 

여기에 여수심포니오케스트라와 위너오페라합창단, 여수시민합창단이 함께해 작품의 음악적 완성도를 더한다. 오케스트라의 풍성한 사운드와 합창이 어우러져 여순사건의 비극과 그 속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욱 입체적으로 그려낼 것으로 기대된다.

 

세 성악가에게도 이번 공연은 각별하다. 지난해 《침묵 1948》에서 한 가족으로 처음 만난 이들은 작품을 함께하며 서로에 대한 신뢰와

친밀함을 쌓았고, 올해 다시 같은 관계로 무대에 서게 됐다. 특히 장서연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음악대학 합격으로 유학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이번 공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학교 측이 입학 시점을 조정해 주었다. 새로운 음악적 여정을 시작하기 전, 지난해 함께했던 선배들과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출 수 있게 된 것이다.

 

작품과 배역은 달라졌지만, 세 사람의 호흡은 더욱 깊어졌다. 무대 위에서는 석구와 해심, 영분으로 가족의 이야기를 펼쳐내고, 무대 밖에서는 서로를 아끼고 응원하는 동료로서 인연을 이어간다. 이러한 신뢰와 교감은 작품 속 가족의 관계에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관객들에게 더욱 진정성 있는 감동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한 작품에서 시작된 만남이 올해 또 다른 작품으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우정과 음악적 성장이 함께 쌓여 간다는 것. 세 성악가의 재회는 《화양애가, 무명의 노래》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이야기다./강용운기자